영혼의 울림
일요일 저녁, 두 달 여 간의 피곤한 생활을 접으며 예술의 전당에서 장한나의 공연을 봤다.
클래식 공연은 약간의 의무감을 갖고 보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걱정도 된다. 과연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사실 같은 예술의 전당에서 한 공연이지만 작년인가에 봤던 금난새의 공연은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은 지루함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배리에이션과 텐션이 존재하는 재즈에 더 흥미를 느끼기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음치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지만, 뮤지션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재즈와 클래식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클래식도 그렇고 재즈도 그렇지만, 음악을 아무 생각없이 통으로 듣고 있으면 지루함의 나락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미되고 가사를 통해 명확히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음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듣지 않으면 집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최소한 재즈는 그렇게 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귀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장한나 공연에서 나는 하프시코드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거기에 오는 사람들 한결같이 여유 넘치고 음악을 아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그래서 난 처음 자리에 앉으면 염치 불구하고 관객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나의 탁월한 예매 능력 때문에 항상 앞 자리에 앉기 때문이다. 이번에 특이했던 건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됐을까, 뒤 쪽에도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우리 앞에 앉아있던 남자애와, 휴식 시간 이후 엄마들끼리 앉기로 했는지 그 옆으로 온 여자애. 한 치의 산만함도 없이 공연을 조용히 지켜봤다. 마치 강마에라도 된 양 격정적으로 음악을 감상하던 솔솔이와 대조가 됐다 ㅎㅎ. 아마도 부모가 음악하는 사람들이거나 음악을 공부하는 애들이겠지. 솔솔이도 그 정도 나이 되면 그런 모습을 보여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음.

지휘자가 없었고, 바이올린과 비올라 주자들이 공연 내내 서있었던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정말 신선한 느낌이었다. 옷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집중력이 흐트려져서 삑사리를 두 번 냈던 음악 감독이자 유명한 솔로이스트라는 퍼스트 바이올린도 그렇고, 뭐라고 표현해야 되는거지 제 2 바이올린 구역의 퍼스트 바이올린? 그 아저씨의 다이나믹한 연주 등은 일반 오케스트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장한나 없이 두 곡을 연주했던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지루함에 대한 걱정은 저 멀리 사라질 수 있었다.

2년 전에 비해 한결 아니 훨씬 날씬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장한나. 외모는 훨씬 보통 사람 다워졌으나, 연주가 시작되자 역시 범인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비발디 곡만 주구장창(주야장천이라고 해야 되던가) 했는데, 첼로 솔로 부분에서는 항상 퍼스트 첼로와 류트 주자를 반주로 사용했다. 눈을 감은 채로 눈을 치켜뜨다가(눈썹을 올리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과 호흡을 맞추는 연주자들을 바라볼 때면 그 눈을 바라보는 연주자들이 놀라서 연주를 못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키스 자렛이 피아노 치면서 시끄럽게 스캣을 해대는 것처럼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거친 복식호흡의 숨결. 라이브의 참맛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건, 마치 신과 교감하는 듯한, 실수는 인간이나 하는거라고 나의 연주는 차원이 다르다고 웅변하는 듯한 그 위풍당당한 태도. 고도의 몰입 상태로 들어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채 영혼의 울림을 들려주는 듯한 그 연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그 절대적인 존재가 보여주는 신비로운 음의 향연. 바람의 나라에서 김홍도가 초상화를 그리는 건 인간의 영혼을 담는 작업이라고 했듯이, 예술이라는 건 자기 자신과는 교감하기 힘든 내면의 세계, 영혼의 경지를 표현해내는 작업인 것 같다. 막막하고 두려움에 싸여 있던 내 가슴을 어느 정도 맑게 해준 것 같았다. 그런 경지에 도달했을 때 나는 이미 내가 아닌 거겠지만, 그런 경험을 꼭 해보고 싶다.

먹고 사는 데 있어서 걱정이 없어지면 꼭 아름다운 영혼을 가꾸기 위해 노력할테다.
by jhoney | 2008/11/12 13:54 | H Diary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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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honey at 2008/11/14 09:18
먹고 사는 데에는 걱정 별로 없으니까 우리 아름다운 영혼을 가꾸도록 하자 ^^;; 나도 후기 써야 되는데 점점 게을러지고 있음 ...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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